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어도어 루스벨트 (문단 편집) == 기타 == * 시어도어의 애칭이 '테디(Teddy)'라서 테디 루스벨트라고도 알려져 있고 미국에서도 테디 루스벨트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정작 본인은 테디라고 불리는 것을 대단히 싫어했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테디'라는 애칭은 'Teddy', 'Teddie'라는 표기가 있는데 가족들이나 그의 친구들은 그를 부를 때 Teddie라는 표기를 사용했다고 하며, 루스벨트 본인은 자신의 이름을 줄여서 Thee라고 쓴 적이 있다. 당시 국민들이 부른 애칭은 Teddy이고 오늘날에도 Teddy Roosevelt라고 쓰는데 Teddie와는 달리 Teddy란 표기를 싫어했다고 한다. 당시 언론에서는 풀네임 머릿글자를 따서 '''TR'''이라고 불렸는데, 이것은 언론에서 대통령을 [[이니셜]]로만 부른 최초의 사례이다. 한국 언론에서 [[정치인]]을 [[김영삼|YS]], [[김대중|DJ]], [[김종필|JP]], [[이명박|MB]] 등으로 부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인데, 그 원조격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 [[라이트 형제]]가 비행에 성공한 시기가 루스벨트 재임기였는데, 그래서인지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초로 [[비행기]]를 탄 [[미국 대통령|대통령]]'''이 되었다. 또한 '''최초로 [[자동차]]를 탄 [[미국 대통령|대통령]]'''이기도 하다. 해군 [[잠수함]]에 최초로 탑승하여 직접 잠수함을 조타하기도 했다. 다만 죽은 날짜가 하필이면 2살 연상인 [[토머스 우드로 윌슨]] 재임기에 죽었다. [[쿨리지]]와 차이점 1. 시어도어 루스벨트 10월 출셍이고 [[쿨리지]]는 독립기념일에 태어남 2. 사망 날짜가 1월에 죽는 것을 맞지만 루스벨트는 1월 6일 사망 쿨리지는 1월 5일에 사망했다 단 1일 차이로 3. 루스벨트는 우드로 윌슨에 재임기에 죽었지만 쿨리지는 2살 연하인 [[허버트 후버]]가 퇴임 전에 사망함 4. 사망 원인도 다르다. 루스벨트는 관상동맥폐색이고 쿨리지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 ||[[파일:external/img.photobucket.com/tr050105.jpg|width=300]]|| ||사냥복 차림의 루스벨트|| >'''"당신 나라에는 특이한 것이 두 개 있는데, 바로 [[나이아가라 폭포]]와 당신네 나라 대통령이오."''' - 루스벨트 재임기에 미국을 방문한 한 영국 외교관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음에도 어딘가 특이한 면이 있어서 아래의 일화에서 보듯 기행도 많이 일삼았다. 오죽하면 영국 외교관 입에서 저런 말이 나왔을까. * [[프랑스]] 대사인 주세랑이라는 사람과 함께 산책을 했는데 산책하다가 너무 깊어서 걸어서 건너가기 힘든 [[개울]]을 만나자 대통령은 갑자기 옷을 훌훌 벗고 주세랑 대사에게 옷을 벗을 것을 권했다. 결국 그 프랑스 외교관도 웃통을 벗고(…) 미국 대통령과 함께 헤엄쳐서 개울을 건넜다. 또한 그와 함께 산책한 영국 대사는 그 날 일기에 '''죽는 줄 알았다. 산책이라더니 어떻게 2시간 반 동안 등산하냐.'''며 이런 식의 일기를 남겼을 정도였고, 그 영국 대사가 지쳐서 움직이지 못하자 앞서가다 말고 내려와서 영국 대사를 잡아끌고 끝까지 올라갔다. 또한 한 친구와 산책하다가 산 속에서 '''폭발음'''이 들렸는데, 이것은 채석장에서 굴을 터뜨린 소리였다. 당연히 바위조각들이 튀고 머리 위로 쏟아지는데 되려 친구에게 '바위조각 많이 떨어지는 곳으로 가 보자'고 억지로 끌고 갔다고 한다. 이게 뭐 산책인지 [[유격 훈련]]인지 분간이 가지 않지만 이런 일화를 보면 [[마이페이스]] 기질이 있었다. * 운동을 너무 좋아해서 대통령 시절 복싱선수 존 설리번을 백악관에 불러 [[복싱]] 연습을 했을 정도였다. 연습 중 부상당한 적도 많지만 눈이 찢어져도 끝까지 연습을 했다. 정통으로 한쪽 눈을 얻어맞은 적도 있었는데 결국은 그 눈의 '''시력을 잃었다'''(즉, [[애꾸눈]]). 국회의원들을 데리고 장애물 [[경주]]를 하기도 했다. 루스벨트의 하버드 동기였던 일본 외교관 가네코 겐타로[* [[이토 히로부미]] 내각에서 농무상과 법무상을 지냈다.]는 루스벨트가 운동을 좋아한다는 점을 알고 일본 [[유도]] 선수들과 [[스모]] 선수들을 백악관으로 초빙해 일주일에 세 번씩 대련할 수 있도록 주선해주기도 하였다. [[백악관]]에 [[요코즈나]]를 초청한 적도 있다. * 유도와 스모 뿐 아니라 일본 문화 자체에 상당히 관심이 많아서 [[오륜서]]와 [[추신구라]], [[무사도]]([[니토베 이나조]] 저)를 애독했다. 특히 추신구라에 대해서는 최고의 이야기라는 극찬을 했다. 루스벨트 시절 [[미일관계]]는 단순히 [[태평양]] 방면에서 미국의 외교적 이익을 얻기 위한 차원을 넘어 루스벨트 개인의 일본에 대한 호감이 작용한 게 아닌가 하는 말까지 나올 정도.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이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만세|BANZAI]]"'''라고 글을 메모하기도 했다.[* 러시아를 원래 싫어하기도 해서 이러한 말을 남긴 것도 있다. "흑인, 황인, 백인을 통틀어서 제일 진실하지 못하고, 불성실하고 거만한-줄여서 말하면 절대 믿으면 안되는-사람들이 러시아 사람이다(No human beings, black, yellow or white, could be quite as untruthful, as insincere, as arrogant — in short, as untrustworthy in every way — as the Russians)"라는 말을 남기기도 해다.] 뿐만 아니라 루스벨트는 [[도고 헤이하치로]]의 훈시를 영어로 번역한 후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2&nNewsNumb=002333100016|미군에 배포]]했다. 일본 외교관들에게서 [[일본 요리]]를 대접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당시 일반적인 서양인들은 생선을 사용하는 일본 요리(특히 [[회]])에 기겁을 했지만 루스벨트 본인은 맛있다고 칭찬하며 잘 먹었다고 한다. * 1912년 대선에 출마하여 [[밀워키]]에서 연설을 준비 중에 괴한[*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전임 매킨리 암살을 사주했다는 음모론을 믿는 자였다.]에게 피격당해서 오른쪽 가슴에 총을 맞았는데 '''갈비뼈가 부러지고 가슴에 총탄이 박힌 채로 한 시간 동안''' 연설을 한 후에 병원으로 갔다. 그나마 연설도 숨을 헐떡이면서 겨우겨우 해냈으며 연설 후 의사에게도 '들것에 누워 가기 싫다. 내 발로 걸어가겠다'며 끝내 병원까지 걸어갔다. 총탄이 루스벨트의 상의 가슴 주머니에 있던 안경 케이스와 연설문을 뚫고 가슴 근육에 박혔는데, 워낙 운동과 탐험으로 다져진 강건한 체구였던 덕택에 폐를 뚫고 들어오는 치명상을 입지 않았다. 이 행동에 대해서 그의 반대자인 [[우드로 윌슨]] 등도 '나는 루스벨트의 정치 노선에는 반대하지만, 그 기개는 존경한다'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또한 루스벨트가 총상을 치료하는 중에는 같이 대선에 출마한 윌슨과 태프트 모두 선거운동을 중단했다고 한다. *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당시 대통령 윌슨에게 "나도 1개 [[기병]] 사단을 지휘해서 참전하겠소!"라고 요구했다. 물론 윌슨의 대답은 [[삼국지 10/문제점#s-3|"지금은 그럴 시기가 아니오."]] * ||[[파일:WcvxX5H.jpg]]|| ||[[무스]]를 타고 있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해당 사진은 루스벨트의 사진중 가장 유명한 것이고 실제로 아는 사람들도 많지만, 하버드 도서관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컬렉션 소속 큐레이터 헤더 콜에 따르면, 합성된 사진이다. 1912년 대통령 경선때, 뉴욕 트리뷴에 각 후보가 당을 대표하는 동물을 타는 모습으로 올릴 목적으로 Underwood & Underwood 사진 회사에 의해 합성된 것. [[https://allthatsinteresting.com/teddy-roosevelt-riding-moose|출처]] (사실 그냥 봐도 무스와 루스벨트의 사진 해당도가 차이난다.)][* [[파일:1912-campaign-photo.jpg]] 사진이 진짜였다면 코끼리 타고 있는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가 왠지 더 대단해보인다. 오른쪽은 [[우드로 윌슨]].] || 모험심이 강해 탐험과 사냥이 취미다 보니, 자연환경보호정책을 편 것 치고는 상당히 사냥한 동물들이 많았는데, 이 당시에는 자연보호활동과 사냥을 하는 것의 괴리가 문제되지 않았던 모양으로 이를 가지고 루스벨트를 비판하는 이는 생각보다 드물었다. 사실 자연보호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 자체가 프로 사냥꾼인 경우가 부지기수였는데, 이는 그들 사냥꾼이야말로 '''동물 숫자의 감소를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10년 전에는 초원에 우글거리던 [[코끼리]]떼가 지금은 손꼽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면 경각심을 느끼는 것도 자연스럽다. 어찌보면 '''코끼리가 다시 많아져야 내가 사냥을 즐길 수 있다(좋게 말하면 인류가 자연을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사냥과 관련한 유명한 일화로는 [[테디 베어]] 이야기가 있는데 관련 일화는 해당 항목 참고. * 탐험에 대해서는 1909년 대통령에서 퇴임하자마자 스미스소니언 협회의 지원을 받는 과학탐험대를 인솔하여 바로 아프리카 탐험을 떠났다. 1913년에는 브라질에 위치한 지도에 나와 있지 않는 미탐사 지역인 다우트 강 탐험을 직접 이끌기도 했다. 탐험을 마치고 루스벨트는 "소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 위의 아들이 한 말처럼 '''진짜로 장례식장에서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말려서 실패했지만 그는 [[관(장례)|관]]에 들어가 보고 싶다며 징징댔다고 한다. * 골치를 앓고 있던 중요한 사안에 대해 정부의 고위관리와 회의하던 도중에 조카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아저씨, 4시가 넘었어요!"라고 말하자 관리에게 "저 아이들하고 4시에 사냥을 가기로 했는데, 미안하지만 이 문제는 나중에 논합시다. 원래 애들에게 있어서 기다린다는 것은 아주 견디기 힘든 일 아니오?"라며 회의도 대충 끝내고 냅다 사냥을 나가버렸다. * 아이들을 좋아해서 대통령 시절에도 자식이나 조카들을 데리고 어울려 놀곤 했다. 함께 사냥을 가거나 승마를 하기도 했으며 '''[[베개싸움]]'''까지도 했다. 심지어는 아이들과 함께 백악관 만찬장의 '''쥐잡기'''를 진두지휘했다고 한다. [[영부인]] 이디스는 이렇게 말했다. "제 아이가 7명인데(원래 루스벨트 부부의 아이는 6명인데, 남편까지 합쳐서 한 말) 시어도어가 제일 어려요." * [[스테이크]]를 좋아해서 즐겨먹었으며 음식을 한가지가 아닌 항상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는것을 좋아하는 미식가였다. * [[뉴욕]] 경찰청장 때와 주지사 시절에는 검은 망토로 변장하거나 경찰관으로 변장하고 공무원들이 있는 곳을 돌며 졸거나 근무를 똑바로 안 하는 공무원들을 보면 즉석에서 질책했다고 한다. 일종의 [[암행어사]]를 직접 했던 셈이다. * 그림도 취미 중 하나였다. 자식들이나 어린이들에게 직접 편지를 썼는데 어린이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는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아이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항상 그림을 그려서 편지를 보냈다. ||[[파일:external/www.bartleby.com/15.gif]]|| ||[[파일:external/www.bartleby.com/26.gif]]|| 그가 편지에 그린 그림. 두 번째 그림은 백악관 정원의 풍경이다. * [[맥스웰하우스]] [[커피]]의 유명한 [[캐치프레이즈]]인 '''"마지막 한 방울까지(good to the last drop)"'''[* 정확하게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좋구만!"이지만 한국에서는 저 표현으로 쓰인다.]가 오랫동안 이 양반 작품으로 알려져 왔었다. 1907년 그가 맥스웰하우스 커피점에서 커피를 마시게 되었는데 커피가 어찌나 맛있던지 저 말을 하며 격찬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 '''의도적으로 퍼뜨린 루머'''이며 후에 제너럴 푸즈의 전 회장 클리퍼드 스필러가 테디 루스벨트의 말에서 따온 게 아니라고 확인해 줬다. 1920년대 코카콜라도 같은 문구를 사용했다고 한다. 어찌됐건 루스벨트가 엄청난 커피광이었다는 건 사실이다. * 미국의 상징동물을 [[흰머리수리]]에서 [[회색곰]]으로 바꾸려고 했다. 물고기나 잡아먹고 사는 흰머리수리가 강한 미국의 상징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참고로 독수리가 미국의 상징이 된 것은 다름아니라 로마제국의 문장이 독수리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독수리를 문장이나 상징동물로 써먹고 있으며 미국 역시 독립전쟁 이후부터 줄곧 잘 써먹었다. 다만 회색곰 역시 루스벨트의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미국의 여러 주에서 종종 마스코트로 써먹고 있긴 하다.] * ||[[파일:external/roughridergun.com/Little-Tx.gif]]|| [[텍사스]]라는 애마가 있었다. 여기에 얽힌 이야기도 꽤 된다. * 사진기억력을 가져 매일 아침 커피타임에 책 한 '''권'''씩을 읽었다고 한다. 한 번은 친구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책을 빌려줬는데 책의 분량이 좀 많았다. 그러나 저녁 식사 때 초대되어 다시 찾아가보니 대통령은 이미 그 책을 독파하여 '그 책 읽어보니까 어떤 부분은 어떻고...'라며 인상 깊었던 부분에 대해 친구에게 열심히 설명했을 정도. 속독 능력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다독으로도 유명했다. 덧붙여 친척인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속독 능력자였다고 한다. * 루스벨트에게는 38구경 권총이 있었는데, 인생을 함께 한 총이었다. 이 총은 박물관에서 두번이나 도난당했다. 첫번째 도난은 박물관 뒤 숲에서 찾았고 두번째 도난은 어처구니없게 잃어버린 후[* 앤더슨이라는 사람의 여자친구가 남편이 훔친 걸 앤더슨에게 알려줬고 앤더슨은 그걸 FBI에 연락하였다.] 20년만에 되찾게 되었다. * 간혹 웹상에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어록으로 "보수주의자를 화나게 만들고 싶으면, 그에게 거짓말을 하라. 리버럴을 화나게 만들고 싶으면, 그에게 진실을 말하라"(To anger a conservative, lie to him. To anger a liberal, tell him the truth.)라는 표현이 떠다니기도 했지만, 실제로 루스벨트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옥스포드 영어사전 편집자 베리 포픽(B.Popik)이 현존하는 모든 어록들을 검토해 봤지만, 그런 말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https://www.politifact.com/facebook-fact-checks/statements/2019/mar/11/facebook-posts/no-teddy-roosevelt-never-said-quote-about-liberals/|#]] 아마도 루스벨트의 당적이 공화당이기 때문에 생긴 루머로 보이는데, 애초에 저 시대의 사람의 정치적 포지션을, 학자도 아닌 일반인들이, 오늘날의 기준으로 분류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은 일이다.[* 가령 극단적인 예를 들면 박정희 정부는 강력한 정부의 개입을 추구했으니 진보좌파라는 주장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 [[니미츠급 항공모함]]의 4번함 CVN-71에 이름이 붙었다. 참고로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별명은 '큰 몽둥이(Big Stick)'. * 처음으로 [[시크릿 서비스]]가 미국 대통령의 경호 임무를 맡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전임 대통령인 [[윌리엄 매킨리]]가 암살당하자 더 이상 대통령의 경호 임무를 방관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의회가 재무부 산하 기관인 [[시크릿 서비스]]에게 경호 임무를 맡긴 것이다. * 아래 명언을 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목표(별)을 향해 바래보고 꿈을 위한 내실을 다져라(땅을 꾿꾿히 디뎌라)라는 의미. >'''Keep your eyes on the stars, and your feet on the ground.''' >네 두 눈은 별을 향하고, 네 두 발은 땅을 꾿꾿히. * 미국 [[미식축구]] 역사에도 한 획을 그었다. 초창기 미식축구는 [[아이비 리그]]에서 활성화되어 점점 야구와 어깨를 나란히하는 인기종목으로 올라가고 있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미식축구 특유의 과격성과 폭력성, 특히 선수보호란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선수들의 크고작은 부상에, 영구적 장애, 심하면 사망도 나올정도라 미식축구 폐지론까지 나올정도로 여론이 나빠졌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거 사내들이 스포츠 좀 하면 다칠수도 있는거 아니오?" 라면서 오히려 젊은이들의 진취성을 높이자고 미식축구를 적극 활성화 시켰는데, 하필 얼마후 [[하버드 대학교]] 선수였던 아들이 경기도중에 코뼈가 박살나자 경기를 일으켜 그날 즉시 NCAA 임원, 각 대학교 코칭스태프, 총장을 집합시켜 회의를 해서 강제로 보호장구를 의무화 시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